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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우리 (우리말 연구가)

 

99502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갓난이와 간난이

 

갓난이와 간난이

 

'갓 낳은 아이'의 뜻을 가진 말

'갓'은 '가시(여자)'의 뜻이 되기도 하고

 

한이네 반에선 겨울 방학 과제로 각자 '우리 집 뿌리찾기'에 관한 것을 조사해 오기로 했다. 그 뿌리찾기에는 자기의 할아버지-할머니 이름도 적어 오기로 했다. 증조-고조대의 할아버지-할머니 이름도 알면 모두 적어 오기로 했다.

개학날이 되어, 아이들이 해 온 것을 정리해 본 선생님은 할아버지-할머니 이름들 중에 비교적 흔한 것을 칠판에 적으셨다.

*간난;11명

*언년;7명

*아지;6명

*아기;3명

아이들은 '간난'이란 이름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것이 궁금했다. 선생님이 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옛날에는 딸아기를 낳으면 이름도 지어 주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 그러나, 이름은 불러야 하니까 어떻게 했겠니? 그냥 '아기'로 부른 거야.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그냥 이름이 돼 버린 수가 많았거든. '아기'를 '아지'라고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름이 '아기'나 '아지'로 된 거야."

"그러면, 선생님. '간난'이란 이름도 '아기'란 뜻인가요?"

슬이가 물었다

"간난'이란 이름도 '아기'라는 뜻과 같지. 이 이름은 이렇게 되어 나온 이름이거든."

선생님은 칠판에 이렇게 적으셨다.

갓 낳은 이>갓난이>간난이(간난)

"이러한 과정으로 '간난-간난이'란 이름이 나온 것인데, 여기서, '갓'은 '새로'의 뜻이니까 이 이름도 '아기'란 이름과 거의 다를 게 없지."

선생님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옛날 여자들 이름에 이러한 이름들이 많게 된 건데, 아들을 낳는 경우는 좀 달라서 이름을 지어 주었기 때문에 '아기'와 같은 할아버지 이름은 별로 볼 수가 없는 거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그러면 '언년'이란 이름도 '아기'란 뜻인가요?"

한이가 벌떡 일어서서 물었다.

"그건 아니지. 선생님도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언년'이라는 이름은 원래 '엇년'이란 이름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아들 낳기를 기대했는데,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고, 생각이 어긋났다는 뜻으로 '엇'을 넣었고, '딸'이라는 뜻의 '년'을 넣어 '엇년'이란 이름이 되었다는 거야."

이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보람이는 그 때서야 생각난다는 듯이 일어서서 말했다.

"저희 증조할머니 이름이 '구달'이거든요. 그런데, 원래는 '끝딸'이었대요. 그 '끝딸'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올리는데, 그 소리와 비슷한 '구달'로 호적에 오르게 됐다고 들었어요. 딸을 그만 낳으라고 '끝딸'이라고 지었다는데, 또 딸을 낳았대거든요."

또 다른 아이가 말을 했다.

"저도 이번 숙제 때문에 알았는데요, 우리 고조할머니는 '막례'래요. 아버지가 말씀을 해 주시던데요, 이 이름도 딸을 그만 낳으라는 뜻으로 '막내'라고 지은 거래요."

여기까지 듣고 계시던 선생님이 설명을 보태셨다.

"아들낳기를 원하는 여자 이름은 그 외에도 무척 많단다. 딸 그만 낳으라고 '구만'이란 이름도 있고, '마기'나 '막둥이' 같은 이름도 있지. '구만'은 '그만'이란 뜻이고, '마기'는 '막이' 즉 '막는다'의 뜻을 갖고 있는 거야."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던 채운이가 이 말을 받아 일어서서 말했다

"저의 증조모님은 '아지'이고, 큰증조모님은 '대아지'래요."

"대아지? '돼지'란 이름을 그렇게 적었을까?"

선생님이 물었다

"그게 아니구요. 원래 '아기'란 뜻의 '아지'였는데요, 또 아기가 태어나서 그 아기가 '아지'가 되고, 먼저 아기였던 큰증조모님은 '큰아기'가 되었다가 '큰'이 한자로 '대(大)'가 돼서 '아지'와 '대'가 합해 '대아지'가 되었대요."

"큰아긴데 '대아지'라? 그런데, 꼭 '돼지'란 이름으로 들리는구나."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 댔다.

 

옛 여자들 이름에는 '언년'도 많고, '아지'도 많지만, 가장 많은 것은 '간난'이다.

'간난'이란 이름에서 '갓난'은 '갓난'이 변한 것이고, '갓난'은 '갓낳은'이 줄어 된 것이다.

'갓'이란 말은 '새로' 또는 '처음'의 뜻을 갖는 말이다.

그래서, 새로 시집을 왔다고 하면 '갓 시집왔다'고 하고, 점심을 방금 먹었다는 뜻으로 말할 때는 '점점심을 갓 먹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스무 살 이상으로 10의 배수(20,30,40,……) 되는 나이를 말할 때는 '갓'을 앞에 붙여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갓 스물'이라고 한다면,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갓'이란 말은 많은 친척말을 이루어 놓았다.

'갓발기'란 옛말이 있는데, 이 말은 '막 밝을 무렵' 즉 '새벽'을 일컫는 말이다. '새로'란 뜻의 '갓'과 '밝은 때'란 뜻의 '밝이'가 합해서 된 이 말은 옛날에는 흔히 썼던 말이었으나, 지금은 '새벽'이란 말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부부'란 뜻의 옛말은 '가시버시'이다. '갓'이 '가시'로 되면서 이 말이 나왔는데, '새로 두 벗이 짝지음'을 나타낸 말이다. '새로'의 뜻의 '가시'는 또 다음과 같은 여러 말을 이루어 놓았다.

*가시아비;장인(아내의 아버지)

*가시어미;장모(아내의 어머니)

*가시집;처갓집(아내의 친정집)

*가시할아비;장조부(아내의 할아버지)

*가시할미;장조모(아내의 할머니)

그러고 보면, '갓'은 '가시'로 옮겨가면서 또 다른 뜻인 '갓 시집 온 사람'의 뜻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시집 간 여자'의 뜻을 갖는 '가시'는 나중에는 그냥 '여자'의 뜻으로도 되었다가 '가시내'라는 또 하나의 낱말(사투리)을 만들어 놓았다.

'간난이'란 이름이 나오게 만든 '갓'은 친척말이 이처럼 많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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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이름>

 

우리의 가정에서도 예로부터 귀한 아이일수록 나쁜 뜻을 담아 불러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름은 아니고 별명 비슷하게 스스럼없이 불러 주는 호칭에 '돼지'나 '악동' 같은 것이 그런 예다.

"이 돼지야, 그만 좀 먹어라."

"이 악동 좀 봐. 어느 틈에 밥상 위로 올라갔어."

귀여워서 한다는 소리가 이처럼 '돼지'나 '악동'이다.

이러한 전통 관습은 작명에서도 이어졌다. '악명위복(惡名爲福)'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이름을 나쁘게 지을수록 복을 갖는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임금의 가문에서까지 '개똥'이라는 이름이 나왔고, 양반 가문에선 '도야지(돼지)'라는 이름도 나왔다. 예컨대, 조선 고종 임금의 아명(아이 때 이름)이 '개똥'이고, 조선시대 유명한 정치가 황희 정승의 아명이 '도야지'이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를 높이는 정책을 썼던 조선시대엔 문물 제도 전반을 중국식으로 확립하게 됨에 따라 성씨는 물론 이름까지 한자식으로 표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양반 세계에서의 공식적인 차원에서의 일이고, 상민이나 노비들은 대부분 우리 고유의 말로 지어 왔다. 그런데, 그 이름으로 쓰인 고유의 말들을 보면 바람직한 뜻을 담지 않은 것이 상당히 많음을 보게 된다.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펴낸 직후, 김수온 선생이 어느 건물의 낙성기를 적은 일이 있는데, 그 곳의 <사리영응기>라는 부분을 보면 47 명의 사람 이름이 성씨와 함께 기록돼 있었다. 거기에는 이름들이 모두 한글로 나와 있는데, 지금 사람들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들이었다.

 

막동, 타내, 올마대, 오마디, 오마대, 오망디, 오미디, 쟈가둥, 마딘, 도티, 고소미, 매뇌, 가리대, 올미, 더믈, 샹재, 검불, 망오지, 똥구디, 수새, 쇳디, 랑관, 터대, 흰둥, 우루미, 어리딩, 돌히, 눅대, 아가지, 실구디, 검둥, 거매, 쟈근대, 북쇠, 은뫼, 망쇠, 모리쇠, 강쇠, 곰쇠, ……

 

우리식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것들이었다. 얼핏 보아도 천박스러운 뜻을 가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 같은 것도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도 꽤 많다. 그러나, 이들 이름들은 분명히 모두 우리말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마른 풀'이나 '나뭇잎'이란 뜻의 '검불'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가 하면, 끝에 나았다는 뜻의 '막동'이 있고, '늑대'라는 짐승의 이름을 딴 '눅대'도 있다. '망아지(말 새끼)'란 뜻의 '망오지(망아지)', '돼지'란 뜻의 '도티', '검은 사람'의 뜻인 '검둥'이나 '거매', '망할 놈'의 뜻의 '망쇠', '똥구덩이'란 뜻의 '똥구디' 같은 이름들도 눈길을 끈다.

'똥'이나 '쇠'자와 같은 천스럽게 들리는 말을 써 가면서까지 이와 같은 천한 이름을 쓴 것은 왜일까? 그들의 신분이 천하거나 자식이 아무렇게나 자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일까?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임으로써 복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은 한자로 적고 이름을 한글로 적었는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이름들을 한자로는 표기하기가 어렵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름을 문서에 한자로 기록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음의 예를 보자.

이름

표기

그 뜻

돌쇠→

돌쇠(乭釗)

(돌같이 단단히 자라라고---)

막둥이→

막동(莫童,幕童)

(막내로 태어났다는 뜻)

간난이→

간란(干蘭)

(갓 낳았다는 뜻)

언년이→

언년(彦年)

(엇났다는 뜻에서. 딸이라 기대에 어긋나--)

쌍가매→

쌍가매(雙可買)  

(머리에 가마가 둘 있는 사람

아지→

아지(兒之,阿旨)

(새 아이'라는 뜻. 앚+이)

아기→

악이(惡伊)

('아기'라는 뜻)

큰애기→

대아지(大兒之)

('먼저 난 아이'라는 뜻)

부엌쇠→

복쇠(福釗)

(부엌에서 낳았다는 뜻)

도야지(돼지)

도야지(島也之),

돈지(豚之)

 

이러한 천명장수(賤名長壽)의 사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요즘에 와서는 이름은 우선 좋은 뜻을 담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람', '슬기' 같은 아름다운 이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름은 어디까지나 뜻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나간 것이다.

이름도 이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악마

 

'악한 마귀'의 뜻을 담은 이름

예전에는 일부러 나쁜 이름을 붙이기도

 

쌍가매, 간난이, 언년이, 먹쇠, 점돌이, 먹보, 막둥이, ……

옛날 사람들의 이름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옛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옛날엔 이름을 지어 주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노인 이름들 중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이상한 것을 꽤 많이 볼 수가 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악마'라고 지은 '사토 시게하루'라는 사람이 출생 신고를 하러 관청에 갔다. 그런데, 관청에서는 이런 이름을 어떻게 올릴 수 있느냐며 받아 주지 않았다. 다른 이름을 지어 와야 등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 등록을 거부당한 그 아버지는 이 이름을 호적에 꼭 오르게 해 달라고 재판을 걸었다.

사람들은 이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토쿄 가정재판소에서는 그 아버지의 요구가 옳다며 그 이름을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소는 '악마라는 이름 등록은 작명권(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리)을 남용한 예이지만…… 법적인 수속이 끝날 때까지 일단 호적 기재를 판결한다'고 판결을 한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악한 마귀'라는 뜻의 '악마'라는 이름이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 판결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악명(나쁜 뜻을 가진 이름)에 대한 문제에 관해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켜 놓았다. 아무 이름이나 호적에 올릴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우리의 전통 작명(이름짓기) 관습으로도 이와 같이 일부러 나쁜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는가 하는 것 등에 관한 관심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떠어떠한 이름은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정해 놓은 규정은 없다. 다만, 이름으로 올릴 수 있는 한자를 2천 여 자로 제한한 것과 이름의 길이를 성씨까지 포함해서 여섯 글자로 제한한 대법원 규칙이 있을 뿐이다.

'악마'라는 이름은 그 부모가 아들을 정말로 악마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름을 갖게 함으로써 그 본인이 씩씩하고 용감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역설적으로 뜻을 만든 것일 것이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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